강상헌의 자서전학교...당신의 숨결 세상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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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민주당 김종률 의원이 각종 선거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지하철역 터미널 등 다중통행장소에 투표소를 설치하자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률안은 통합선거인명부 도입 운용의 근거규정 마련, 면적이 넓은 도농복합선거구의 투표소 추가 설치 등의 내용도 담았다고 한다.
 
 투표를 많이 하도록 하여 선출직 공직자들의 대표성을 높이자는 생각은 중요하다. 저조한 투표율을 생각하면 ‘과연 저 인물이 시민의 대표인가’ ‘저런 이들의 집합을 국민의 대의(代議)기관으로 여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투표를 잘 안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던지 간에 투표율은 높여야 한다. 심지어 투표와 선거는 민주주의와 동의어가 아닌가.
 
 그러나 이번 발의된 법률안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핵심을 비끼고 있기 때문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쉽게 투표소를 찾을 수 있도록 편의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낮은 투표율이 투표소를 가기 어려워서, 편의성이 낮아서만 생긴 결과였을까?

 왜 유권자의 책임은 묻지 않는가? ‘기권할 자유’라는 얘기도 들린다. 낮은 투표율 자체가 의사표시라고 냉소하는 이도 있다. 대세(大勢)에 영향을 못 주는 내 한 표 정도야 없어도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겠다.
 
 지난 대선(2007년) 63%, 총선(2008년) 46% 투표율 수치는 그 전의 선거에 비해 낮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총선에서 30%대의 투표율을 보이는 곳이 20여개 소에 이른다. 최근 들어 벌어지고 있는 교육감선거의 경우 15~20% 정도의 투표율을 보였다.
 
 예상은 더 악화되는 방향이다. 가령 35% 투표율에 35% 득표한 당선자라면 유권자의 12.3%의 지지를 얻은 셈이다. 100명 중 12명의 지지로 ‘대표’가 되다니, 좀 많이 아쉽다 생각되지 않는가?
  
 선거(투표)는 시민의 권리이면서 의무다.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권의 자유라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최선이 없다면 차선(次善)을 고르고, 모두 나쁘다면 그 중 덜 나쁜 쪽을 고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의 얘기지만,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원칙론일 터다.

 중앙선관위은 매번 선거가 끝나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를 만들자는 의무투표제에 관련한 의견을 국회에 낸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크다. 그러나 정작 국회에서는 메아리가 없다. 이번 법률안 발의는 이런 생각의 틀에서 보면 좀 뜬금없는 것이다.
 
 저조한 투표율, 물론 시민으로 하여금 정치를 허망하게 바라보게 한 정치가들의 소행이 이제까지 쌓여온 결과도 그 탓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 정치를 고칠 유일한 시민의 의사표시 수단인 투표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망발이다. 이런 저조한 투표율로 나타나는 시민의 정치의식 부재 또는 왜곡은 치료가 필요한 정도라고 느껴진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벌금이나 사회봉사를 부과하기도 하고, 불참의 이유를 적은 사유서를 제출하게 하는 나라도 있다. 몇 번 연신 투표하지 않으면 선거권에 제한을 두는 나라도 있다. 20여개 나라가 이런 식의 제도를 채택한다. 벌금 액수 등은 심리적 부담을 주는 정도지만 효과는 ‘만점’이란다. 30% 정도 투표율이 의무투표제 이후 90% 정도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매번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의무투표제를 반대할 것이다. 이런 생각 또는 ‘그럴 것’이라는 개연성을 ‘여론’이라고 포장하여 의무투표제 관련 논의를 은근히 막는 분위기가 국회에 없지 않다는 말도 들린다.
 
 의무투표제로 새롭게 투표에 참여하게 될 유권자들이 대개 젊은 층일 것이며, 이 계층은 ‘바꿔보자’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현재 국회의원인 자신의 차기 당선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셈법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이제까지처럼 낮은 투표율의 선거라면 보수 성향의 노장층의 영향력이 커서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며, 자신의 지지기반 구성이 다양하더라도 자신을 뽑아준 현재의 유권자 층을 일부러 나서서 뒤집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 수상한 세월에 한가한 얘기라고 타박하실 이도 있겠지만, 비중 있는 야당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 소식에 소회를 적어 보았다.
 
 유권자의 책임을 묻기가 황공해서 정공법(正攻法)인 의무투표제를 피하는 것인가? 필요하다면 (일부)유권자에게 구박을 받을 법안도 내놓아야 한다. 의무투표제의 필요성에 견주면 투표소 가는 길을 편하게 하는 일쯤은 변죽을 울리는 것에 불과할 터다. 누가 제 발등 찍을 일을 스스로 할 것인가, 역사는 그를 기억한다. <에디터 강상헌>

Posted by 인터뷰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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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상의 국민장’이라고 한 방송은 표현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는 참 여러 가지를 일깨웠다. 살림 어렵고 세상의 강박에 날로 쪼그라드는 민초(民草)들 눈물바람 방아쇠 당겨주는 카타르시스 효과까지도 경이로운 것이었다. 넘어지니 그 나무, 얼마나 키 크고 뿌리 깊은 줄 새삼 알게 됐다. 그 그늘 또한 얼마일까?

 신체 아름답게 간직하여 선종(善終) 후에도 각막이식으로 두 사람에게 사랑의 빛을 나누어 주셨다는 얘기까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의 화환까지 되돌려 보냈다는 등의 많은 미담과 기화(奇話)가 생산 유통되어 매스미디어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훨씬 커 보인 시기이기도 했다.

 다른 사제의 경우와 매한가지로 장례가 봉행된다는 발표, 묘지 면적까지도 일반 사제와 같다는 보도를 접하고 천주교회의 세상인식이 좀 다른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일락 말락하게 보도된 다음 내용이 참 감동적이어서 다시 생각해볼 주제라고 따로 적어 두었다.

 성직자 묘역이 머지않아 모두 차게 되는데 그 때 유골을 수습하여 화장을 한 후 납골당에 모신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까지 떠오른 토지문제의 해결을 위해 더는 새 묘역을 조성하지 않고 화장문화 확산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후손들의 안녕을 위해 산림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겠다.

 전국적으로 묘지가 2,000여만 기, 서울시 면적의 1.5배를 차지한다는 수치나 수도권 북한강 남한강 유역 일대에 들어섰거나 공사 중인 엄청난 규모의 공원묘지들을 본다면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고 김수환 추기경과 천주교회가 가진 현실 인식이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를 느낄 수 있다.

 화장의 방식을 선택하는 장례가 점차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화장 후에도 거창한 석조 납골당에 유골을 모시는 경우가 많아 그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걱정도 나온다. 그래서 수목장(樹木葬)이나 산골(散骨)방식과 같은 친환경적 장례가 서둘러 연구되고 있다고는 하나 예상되는 ‘묘지대란’의 가능성을 잠재우기는 무리라고 한다.

 우리 정계의 한다하는 인사들에게 천주교의 원칙에 따른 잣대를 들이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많이 궁금하다. 선거를 앞두고 선조들 묘를 이장(移葬)하는 얘기는 여의도 참새들의 단골 화제다. 어떤 풍수가 제일 용했다더라 하는 쑥덕공론의 짝이다. 이들의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풍수지리 ‘연구’와 드넓은 호화분묘는 물론 선조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것은 더군다나 아니다.

 ‘옳은 일’ ‘사회를 위해 모두가 해야 할 일’이라며 국민에게는 전통의 포기나 욕망의 절제 등 ‘사실상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정치다. 여론을 일으키고 법을 만들고 강제한다. 그러나 정작 정치의 주체들은 이를 지키지 않는다. 또 이런 이율배반을 혹자들은 ‘미덕(美德)’으로 풀이하기까지 한다. 어디 장례뿐일까?   

 참 신기한 노릇은 선거구민에게는 이런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문 방송이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는 것 같으나 어찌된 노릇인지 소문으로 끝난다. 또 알려져도 이런 식으로까지 ‘힘을 키우는’ 인물에게 우리 유권자들은 표를 내준다. 아무리 봐도 ‘나를 위해 일할 것 같지 않은 인물’을 선택한다. 그리고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 뽑아 주니 맨 날 쌈질이나 하고...” 타령이다. 유권자 노릇도 쉬운 것은 아닐 터다. 

 ‘큰 어른’의 장례가 실증적으로 보여준 원칙의 정신은 실은 생명의 이치다. 우리가 북한 상황에, 미디어 정책에, 4대강 토목사업 등의 논쟁에 힘을 뺏기고 있는 이 시간에도 기후변화의 위기상황과 지혜로운 나라들의 이에 대한 대처는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환경문제는 추상적인 사안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다.

 이 부문에서도 우리는 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지혜를 빚지고 있다. 좋은 추모는 이 빚을 잊지 않는 것일 터다. 어떤 형태로든지 갚아야 한다.  ‘정치지도자’도, 그들을 뽑아 올리고 끌어내리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사실상의 국민장’이 준 지혜는 너무 크다.

 이 어른 닮자는 ‘운동’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한다. 착한 나라가 되겠다. 그러나 이 운동이 혹시라도 정치소비자인 민초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아 천박한 정치놀음을 선전하고자 하는 음모에 오염되지 않는지 경계할 일이다. 국민은 그들의 머슴인 정치가들보다 항상 지혜롭다. 또 힘이 세다. <에디터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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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다’고 해야 할 때 ‘틀리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과문(寡聞)의 탓이겠으나, 특히 우리 정치 동네 인사들에게서 이런 말버릇이 더 많이 관찰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선생님 말버릇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볼까요. 이명박과 박근혜는 틀리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틀리다, 불과 물은 틀리다 따위의 말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르다’라고 해야 맞지요.

 '다르다'는 '같지 않다'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좀 현학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가치중립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영어로 말하자면 디퍼런트(different)가 되겠지요. 

 '틀리다'는 '옳은 것이 아닌 상태가 되다'는 뜻의 동사입니다. 앞서의 예와 같이 설명하자면 가치 측면에서 부정적이지요. 옳지 않은 것, 나쁜 것이라는 얘기지요. 영어로는 롱(wrong)이겠지요.

 왜 이렇게 엄연히 다른 말이 혼란스럽게 오용되고 있는지 곰곰 궁리해 보고 여러 번 물어봤지만 시원한 답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뭇 사람들의 무심한 말버릇이라고 넘겨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필자더러 "자네,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하고 꾸중하실 이도 있겠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한번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 혹은 무의식중에 '다른 것은 틀린 것' '다른 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지는 않은지 하는 걱정이 그것입니다. 또 그 생각의 바닥에 '모든 것은 같아야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획일주의가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지요. 달라야지요. 달라야 창의적인 생명력이 생겨나지요. 사전은 다르다는 말의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있지만, ‘다름’은 우리 삶에서, 또 다른 모든 분야에서 귀하게 여겨져야 마땅한 개념입니다.   

 자녀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학생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도록 짐 지우는 선생은 필경 실패합니다. 부부간에도 그렇지요. 나와 다르니까 부부의 인연이 시작됐고, 지속되지요. 같아야 한다고 한쪽이 강요한다면 거울은 깨지게 마련입니다.

 우리 정치의 ‘틀리다’ 어법을 살핍니다. ‘주류(主流)’ ‘실세(實勢)’ ‘당명(黨命)’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네 정당 정치의 분위기에 그런 획일주의와 함께 ‘다른 것은 틀린 것이자 나쁜 것’이라는 의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윗분의 뜻’ ‘박심(朴心)’ ‘코드’ 따위의 어느 것에라도 맞추지 않으면 모두 자동으로 오답(誤答) 처리되는 기계 속에 매몰된 생각 말입니다.

 일제시대와 정치가 국민만을 바라보지 않았던 불행한 독재정권시기를 거치며 우리 의식에 똬리를 틀고 앉은 획일주의 따위가 못생긴 ‘틀리다’ 어법으로 표출되는 것인 아닌지 묻는 것입니다.

 영국의 신비주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렇게 '현상과 그 뜻의 관계'를 읊었습니다.

한 알 모래알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의 손바닥 안에 무한(無限)을 쥐고
한 순간의 시간에서 영원을 보라.

 ‘순수의 전조(前兆)’라는 시의 한 부분입니다. 모래알 한 알이 세상을 보듬듯, 이 같은 어법과 의식이 담고 있는 획일주의의 큰 영향의 무게 또한 엄존(儼存)할 것입니다.   

 한나라당 소장파 중에 스스로 ‘왼쪽’이라고 내세우며 ‘다른 소리’을 낸다는 ‘민본21’이라는 그룹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들리기로는 용산참사, 방송법, 종부세와 감세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중요 현안들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고 합디다.

 아직 그 그룹의 ‘기여’는 또렷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액세서리론(論)으로 이들을 폄하하기도 합니다. ‘한나라당에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정도의 효용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얘기지요. 그러나 ‘민본21’의 다른 시각, 다른 소리가 어떤 것인지를 듣고 싶은 기대감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로 인해 ‘다름’의 소중함을 느껴보고 싶은 것입니다.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 명징한 언어로 말하세요. <에디터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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